
작은도서관, 문학을 읽다
A good story goes everywhere
신화숙(책돌이도서관 활동가. 광주지부장)
“A good story goes everywhere.”
오래전에 사진으로 담아둔 글이다. 문학이 무엇이냐 묻거든 ‘좋은 이야기’라 답한다. 어디든 퍼져가는 좋은 이야기는 좋은 문학이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덧붙인다.
기억나는 첫 이야기는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 문학전집]이다.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세라였고 하이디였고 조였으며 톰과 허클베리, 왕자, 거지, 제비의 친구였다. 평면도를 배우던 실과 시간에 꽃밭 디자인을 그려 넣은 것은 인어공주가 언니들보다 꽃밭을 더 잘 가꿨다는 것을 읽은 터였다.
5학년 여름방학 무렵, 『Anne』을 만났다. 신지식 번역, 창조사 출판 다섯권 전집. 한 권에 두 편씩 들어있던 2단 세로쓰기 Anne, 제본실이 뜯어질 정도로 여러 번 읽은 Anne, 마음껏 웃고 두근거리고 눈물 흘리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왜 어른들은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물음에 ‘나는 잊지 않을거야’ 대꾸하며 읽은 Anne! 고2 언니가 생일 선물로 받았지만 명실공히 내 책이 된 Anne!! 그 시절 이야기 속 인물들은 죄다 외국인이었지만 이질감은 없었다. 그저 어딘가 살고 있을 법한 사람, 누군가 살아가는 이야기에 스며들었다. 어려움을 헤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다른 이의 삶을 경험하면서 나도 모르게 역지사지를 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여러 해가 지나서였다. 이를 두고 C.S.루이스는 ‘책을 읽는 것은 타인의 자리에 앉아보는 것’이라 했던가. 재미가 있었기에 여러 번 읽은 책이 많다. 이제 와 알게 되었지만 거듭 읽기는 깊이읽기로 가는 길이다. 깊이읽기는 참과 거짓을 구별하게 하며 민주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힘은 깊이읽기에서 나온다고 메리언 울프(『프루스트와 오징어』, 『다시, 책으로』, 어크로스)는 말한다. 독해 능력은 여가를 이용한 책읽기로 가장 강력하게 길러지며 소설(문학) 읽기는 추론하기에 도움을 주는 유일한 읽기 습관이다.(나오미 배런,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어크로스, 2023)

나는 오랫동안 어린이 청소년을 향한 글을 주로 읽고 있다. 15년 전 즈음 가을, 책돌이도서관 바닥에 앉아 서가를 눈으로 훑다가 꺼내든 책 한 권. 첫 장을 펼치고 두 번째 문장을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아홉 줄을 더 읽자 턱 끝으로 마구 떨어졌다. 책장을 덮고 우두커니 있다가 대출한 그 책은 『홀리스 우즈의 그림들』(페트리샤 레일리 기프, 네버 엔딩 스토리, 2010)이다. 반 장 남짓한 첫 페이지에서 눈물범벅이 된 적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다.
5년 전 지인이 보낸 짧은 글 한 편에 다시 비슷한 반응이 왔다. 여섯째 행에서 시작된 눈물은 12행 ‘굶지마오’에서 소리로 터져 나왔고 30분 동안 멈추지 않았다. 곽재구 시인의 ‘봄편지’다. 눈물이 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위로가 넘쳐 눈물이 되어 흐르는 것 같았다. 그 때 홀리스가 떠올랐다. ‘커다란 ☓표가 그어져 있었다.’에서 홀리스에 빙의 된 듯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고 “소망하다의 wish나 원하다의 want의 W”에서 눈물범벅이 된 나를 다시 느꼈다. 내 Wish와 Want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 내 Wish와 Want를 모른척하기 바빴던 나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 무렵 되풀이 꾸던 꿈도 같은 맥락이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려니 생각한다. 어떤 감정이 들게 하든 실천 행동을 하게 하든 움직임을 이끄는 책 말이다. 마음은 때 없이 들고 나기에 그 거처를 알 수 없다지만 눈물은 감정으로 인해 몸이 움직이는 것을 알게 한다. 앞으로도 이런 책을 많이 만나고 싶다.
좋은 이야기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시대라서 좋다. 미래사회를 다룬 『써드』(최영희, 허블, 2023)에 소설을 기억하는 노인이 나온다. 기계 인간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책을 모두 감췄는데 그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 아이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 기억이 있고 그곳에 인생이 있다. 이야기는 멀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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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작은도서관, 문학을 읽다: https://blog.naver.com/kidsmalllib/22429898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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