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고 있는 그림책
별 별 별 다른 사과
천은희 (문화다양성 그림책동아리 환타)
‘여기에 사과 하나 그려줘’라는 부탁을 받으면 저는 흰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꼭지 하나와 없으면 섭섭한 잎 하나를 붙여주겠지요. 색을 입혀달라는 부탁이 없었어도 다양한 색깔 옷을 입은 크레용 가운데 당연히 빨간색을 골라 빈사과를 빨갛게 채워 주었겠지요.
<사과를 그리는 100가지 방법> 이 책은 실제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누가 나를 사찰했나!’ 싶을 정도로 백 퍼센트 아주 똑같이요. 그리고 내 그림을 복사한 듯한 사과 옆에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써 있지요. “우리는 왜 똑같은 사과를 그릴까?”
이 재미나고 기발한 책과 첫 만남은 함께 다양성 그림책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에서 였습니다. 누가 첫 만남은 너무 어렵다고 말했나요? 이 그림책을 보자마자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는 이내 이 책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답니다. 책을 골라 가져온 모임 구성원이 쪽수를 넘길 때마다 공감과 감탄이 나오는 책은 구매하여 집에 있는 아이와 함께 다시 읽어보는 게 저의 일상입니다.
“세모 모양 사과를 사과라고 부를 수 있어?” 책을 넘기던 아이가 건넨 말에 저는 잠시 주춤했습니다. 사실 처음 저도 납득하기 살짝 어려웠거든요. 누가 보아도 뾰족한 모습인데 ‘이게 사과?’ 그러다 문득 어느 에세이에서 본 글이 떠올라 나란히 누운 아이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원래 자연계는 불규칙한 게 당연하니까.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우려나요.
아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런 다양성을 담은 그림책은 어른들과 읽을 때도 물론 재미있지만 아이와 읽었을 때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편견이 산산이 부서진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마침 문화다양성 주간을 맞아 결이 비슷한 그림책 몇 가지를 소개하며 말을 이어 가 볼까 합니다.
제시카 러브의 그림책 <인어를 믿나요?>를 처음 보았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 생생한데요, 공신력 없는 제가 꼽은 그해 최고의 그림책이었어요. 채도가 낮은 화려한 색감으로 그림도 아름다운데 글은 더 아름답고 주제 의식으로 흐르는 이야기의 과정이 정말 매끄럽거든요.
한창 그림책 모임에 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읽어 주고 보여 주고 추천하다가, 아이에게 읽어 주던 날. 다 읽은 책을 덮고 제 딴에는 의미심장한 물음이라고 허튼소리를 해댔죠. “이 친구는 여자 친구게, 남자 친구게?” 그랬더니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몰라, 그런 건 생각해 보지 않았어” 과연 우문현답 아닙니까! 아이에겐 주인공인 줄리안의 성별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되려 제가 고정적인 성별에 갇혀 이 책을 이해하고 있던 거죠. 그 뒤로 저는 아이와 그림책을 함께 볼 때에 함부로 젠체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이와 처음으로 본 문화 다양성 그림책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니 아이 네 살 무렵으로 한참 거슬러 가 봅니다. 지인 추천으로 산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가 우리 가족이 읽은 첫 다양성 그림책이네요. 이 그림책에 빠져 우리 부부가 번갈아가며 아이에게 읽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토끼와 펭귄을 반반씩 닮은 토펭이.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위대한 토펭이’라고 특별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다가도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풀이 죽어 있던 토펭이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두 다리와 헤엄칠 수 있는 날개를 사용하여 기지를 발휘해 늑대의 위험에서 동물 친구들과 마을을 구해냅니다. 평범하다는 것의 기준을 누가 정하며, 평범하지 않다고 혹은 못하다고 해서 선을 긋고 위험한 대상으로 보는 게 맞는 것인지 묻는 책이지요. 동시에 남들과 달라도 너의 멋을 찾아 당당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 많지만 다름에 대해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책을 소개하고 글을 매듭지어볼까 해요. <내 멋대로 슈크림빵>인데요, 크림이 다 떨어져 제빵사에게 버려진 그야말로 속이 빈 다섯 슈크림빵 이야기예요. 그들은 크림을 채우러 각자 흩어져 호기롭게 길을 나서는데 과연 모두 같은 크림을 몸에 담아 올까요? 더 나아가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요?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종종 자리에 앉혀 읽어 주는 대표 그림책인데요 말풍선이 많고 그 안에 글이 많아도 아이들은 정말 재미있게 본답니다. 그리고 책을 다 보면 꼭 이렇게 덧붙여요. “저는 말예요, 제가 슈크림이면요...” 젤리를 채우겠다는 친구, 팥을 채우겠다는 친구, 벚꽃으로 가득 메우겠다는 친구 등 슈에 넣고 싶은 재료가 가지각색입니다.
이처럼 아이도 어른도 내 안에 크림은 내가 정하는 맛으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사과를 그리는 100가지 방법> 그림책으로 돌아와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책 속에는 다 먹어서 앙상한 태만 남은 사과, 껍질로만 그린 사과, 잘라서 단면이 보이는 사과, 데구루루 굴러가는 사과 등 정말 다양한 사과가 등장합니다. 저와 같은 사과 그리기를 하셨던 분들은 긴 글보다 강력한 그림으로 ‘다름’에 대한 용기를 주는 이 그림책을 꼭 한번 보셨으면 해요.
저는 전형적인 사과 그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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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지금 읽고 있는 그림책: https://blog.naver.com/kidsmalllib/223871705137
5월 지금 읽고 있는 책: https://blog.naver.com/kidsmalllib/223871703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