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 #무슨책읽어?

작은도서관에서는 무슨 책을 읽을까?

#작은도서관 #무슨책읽어? 4월 [우리 도서관 독서동아리가 읽은 책]


우리 도서관 독서동아리가 읽은 책


문둥병이 경고하는 지루함이라는 통증


이용주(애기똥풀도서관 강사, 초등교사, 세계시민)




옛날에 문둥병이라며 혐오스런 시선으로 기피되던 나병 혹은 한센병이란 질병이 있었어요. 이 질병은 말초 신경에 침투한 나균에 의해 감각 소실, 마비 등을 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뜻 떠올리는 한센병 환자의 끔찍한 이미지는 실은 나병의 직접 병증이 아니라 2차 합병증입니다. 나병의 직접적 증상은 통증 마빕니다. 고통스런 통증은 누구라도 덮어놓고 일단 피하고 싶겠지만, 한센병은 우리에게 통증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청취하지 않고 도망치려고만 한다면 어떤 비참한 결과가 초래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경고합니다. 통증이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고, 그래서 지금 당장 우리에게 어떤 적절한 행동을 하라고 재촉합니다.


흔하디흔한 가전기기 조차 오래 오래 잘 사용하기 위해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그걸 고지하는 경고음이 필요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기기 작동의 미세한 차이를 경고음으로 캐치하는 사용자의 통찰력이 요청되겠지요. 이 경고음을 잘 듣지 못한다면 자신이 사용하는 사물과의 관계가 결코 원만하진 않을 겁니다. 인간 신체의 경우 그런 경고음이 바로 통증인데요, 한센병은 바로 이런 경고 장치에 치명적 교란이 생긴 겁니다. 추운 겨울날 손이 시린 것도 통증인데요, 이 경고 장치가 마비되는 바람에 한센병 환자는 손가락, 발가락 등을 추위에 방치하다 끝내 절단합니다.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의 저자는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통증 마냥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되는 일종의 경고음이라고 주장합니다. 방치했다간 실존적 윤리적 의미가 파열되고 개인 삶의 의미가 절단될지 모를 중요한 경고음 말입니다. 이족 보행 이후 수백만 년을 진화한 인간이 어째서 아직까지 지루함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경험해야 할까요? 그 감정이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이라는 불편함이 영양분을 보충해 신체를 개선하라는 신호이듯, 지루함은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고 있지 못하다는 신호, 세계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돼 있다는 가장 중요한 실존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한가함과 지루함은 구분됩니다. 한가함이 여유 있는 상태에 대한 기술이라면, 지루함은 그런 상태에 대한 우리의 감정입니다. 결국 한가한 사람이 모두 지루한 감정에 취약한 건 아닌데요, 그럼에도 최근 우리 인류는 한가한 상황에서 지루함이라는 감정에 좌초돼 중요한 경고음을 결국 방치해버렸습니다. 왜일까요?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합니다. 근대 이후 인간은 한가함을 더 이상 여유 있게 상대하지 못하고, 초초하게 안절부절 하다가 지루함의 함정에 빠져버렸습니다. 저자는 여기엔 아주 야비한 경제-구조적 이유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불행은 모두 인간이 방에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방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굳이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팡세-]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방에 가만히 있질 못합니다. 지루한 걸 못참겠단 것이고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설령 집 밖이 아니라도 게임이나 유튜브 등등에 항시 접속해 뭔가에 몰입해야 합니다. 파스칼에 따르면 이처럼 가만 있질 못하고 그렇게 경박하게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는 게 바로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댑니다. 나대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루함으로부터 도망치지 말란 것이고, 지루함은 우리에게 뭔가 중요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걸 듣는 게 정말 괴롭단 겁니다. 지루함은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엄~청 괴롭고 그래서 일단 덮어놓고 피하고 싶어집니다. 왜 그토록 괴롭냐면 지루함은 평소 자기가 스스로를 과장한 허영을 홀딱 벗겨버리고 왜소하고 볼품없는 자신의 진실과 대면하도록 합니다. 그런 진실은 정말 잊고 싶은데 지루함은 바로 고걸 면상에다 다이렉트로 고자질합니다. 그러니까 도망치고 싶은데요, 그래서 그걸 망각할 몰입의 대상을 닥치는 대로 찾으려는 충동이 도발됩니다.


저자에 따르면 지루함이 야기하는 이런 충동은 긴 호흡으론 만 년 전 정주이후부터 시작됐으나 그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불거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20세기 포드주의 생산 이후 도래한 소비-자본주의는 인간의 지루함으로 돈벌이하는 방법을 역사상 최초로 알아냅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포드주의 생산에서는 소비자의 결핍이 전제돼 있기에 생산이 판매를 압도합니다. 예컨대 모두에게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는 생산하면 그냥 팔립니다. 이 시절 중요한 건 생산이지 판매나 소비가 아닙니다. 그러나 포드주의 이후 소비-자본주의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제 문제는 생산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누구나 자동차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문제는 멀쩡한 자동차를 갖고 있는 사람한테 또 자동차를 판매해야한단 것이고, 한대 더 사고싶단 충동질에 성공하느냐에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단 겁니다. 즉 멀쩡한 자동차를 낡았다고 느끼도록 소비자 감정을 조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옷이 한가득인 옷장을 열어젖힌 여성이 입을 옷이 없다고 푸념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단 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지루함에 주목합니다. 지루함의 메시지를 듣고 자신의 진실에 직면하는 건 기업의 채산에 대박 불리합니다. 지루함에 취약한 인간이 닥치는대로 뭔가에 몰두하려는 그 충동을 소비 욕망 안으로 구겨 넣어야 합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소비-자본주의는 인간의 한가함을 착취하는 방법을 획득한 것인데요, 그 결과 지루함에 취약한 인간, 지루함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중요한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인간들이 무더기로 초래된 겁니다. 통증 마비의 한센병이 통증이 주는 경고음을 듣지 못해 팔, 다리를 절단해야 했듯이, 지루함이라는 경고음을 더 이상 듣지 못하도록 소비-자본주의가 자신의 이윤 회로를 설계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위태로운 상태가 아닐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사뭇 불길합니다.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은 바로 그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고 지루함과 마주해 원만하게 의논하게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게 한단 점에서 정말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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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우리 도서관 독서동아리가 읽은 책: https://blog.naver.com/kidsmalllib/223845055929

4월 지금 읽고 있는 책: https://blog.naver.com/kidsmalllib/223845054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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