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그림책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그림책
김중석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큰 사건 사고 없이 살아온 것도 그렇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차 한잔하며 이야기 나누는 보통의 날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으로 책을 만들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는 건 더더욱 그렇다. 작가로 살아오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이렇게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내가 때로는 대견하기까지 하다.
30대 후반, 서울로 올라와 북디자인을 해보겠다고 출판계 주변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그림책을 만났다. 마침 우리 집 아이들이 한창 그림책을 보며 자랄 때라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책은 나에게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미술을 공부했지만 '현대미술'에 집중했기에 풍경이나 인물을 그리는 건 낡고 진부하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그림책과 동화책의 그림을 쉽게 보았다.
'이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는 거 아냐?''뭐야, 그림이 왜 이렇게 유치해?'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건방지고 오만한 태도였다. 막상 그림책 작업을 시작해보니 그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깊고 복잡했다. 해도 해도 어렵고, 끝없이 배우고 연구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삽화와 그림책 작업을 병행하게 되었고, 작가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그림책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교나 커뮤니티도 드물었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볼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 그때 나에게 가장 큰 배움의 길잡이가 되어준 것은 바로 선배 작가들이 만든 그림책들이었다. 헌책방과 서점을 돌며 국내외 그림책들을 찾아다녔다. 원서를 구하러 다니기도 하고, 도서관에 앉아 그림과 글을 분석하며 혼자만의 공부를 했다.
'화면 연출을 이렇게 하다니!' '이건 어떤 기법으로 그린 걸까?' '이 글을 이렇게 그림으로 해석한다고?'
그림책 한 권 한 권이 나에게는 최고의 교과서이자 참고서였다.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다른 작가들의 그림책을 보며 배웠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20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어떤 작가들은 업계를 떠났고, 소식을 알 수 없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히 그림책을 만들어가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김유대 작가 – 『이런, 멋쟁이들!』 이야기꽃
김유대 작가는 내가 동화책 삽화를 시작할 무렵부터 이미 '스타'였다. 서점에 가면 그의 책은 언제나 눈에 띄었다. 만화적인 경쾌함에 시원한 드로잉이 더해져 청량감마저 느껴지는 그림들. 동화책이든 그림책이든 그는 어디에서나 재능을 뽐내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아, 부럽다. 나도 이렇게 그리고 싶다.'
질투심이 날 만큼 멋진 작가였다. 몇 해 전, 그의 대학원 졸업작품 전시에서 우연히 본 벌레 드로잉은 압도적이었다.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운 벌레의 생생한 모습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엄청났다. '이게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마침내 『이런, 멋쟁이들!』로 만나게 되었다.
커다란 판형의 책을 펼칠 때마다 시선을 압도하는 벌레 그림은 감탄을 자아낸다. 3~4cm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애벌레가 거대한 판형에 가득 차서 등장하니 시각적 환기가 일어난다. 벌레의 무늬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정보를 담아 풍부한 읽을거리까지 제공하는 이 책은 작가의 집요함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역시 김유대는 여전히 김유대다.
오승민 작가 – 『점옥이』 문학과 지성사
오승민 작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어, 내 스타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보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화면 구성도 대충 그린 것 같으면서도 한 치의 허술함이 없었다. 그는 수채화, 아크릴, 목탄, 오일파스텔 등 다양한 재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디지털 도구도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였다.
그의 그림책 『점옥이』는 여순항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상징적 장면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그림책이지만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를 만들 듯 그림책을 만들어내는 오승민 작가는 언제나 내게 큰 자극이 된다.
김동수 작가 – 『오늘의 할 일』 창비
김동수 작가는 작가들의 작가이다. 이 작가의 그림책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건 물론이고 작가들도 열렬히 사랑한다. 우리 그림책계에서 김동수 작가만큼 데뷔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세계를 선보이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요란한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조용히 작은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동수 작가. 김동수 작가의 <오늘의 할 일>을 보다가 ‘상상력’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 책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딜가나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느니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한다고 말하는데 정작 그 ‘상상력’은 빈곤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작가가 이끄는 물속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물속에서는 호흡도 힘들텐데 숨이 가쁘지도 않고 잘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물속에서의 긴 놀이를 하고 돌아오면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 것 같다. 오늘의 할 일을 잘 마친 뿌듯함이 읽는 독자들에게도 잘 전달되는 것 같다. 김동수 작가는 언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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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그림책: https://blog.naver.com/kidsmalllib/223810197906
3월 지금 읽고 있는 책: https://blog.naver.com/kidsmalllib/223810197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