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친구 선이에게.
하소아동복지관 내보물1호도서관 관장 백영숙
선아 잘 지내지? 벌써 가을이 깊어 바싹 마른 잎들이 바람에 사그락 거리며 뒹굴거리는 계절이 되었구나. 한 해가 다 지나 가는 동안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가끔 안부만 전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친구에게 책을 권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받고는 제일 먼저 네 생각이 났단다. 학창시절부터 소설을 좋아했던 우리는 서로 경쟁하듯이 책을 읽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선물하곤 했던 오랜 책친구였는데 요즘은 그런 선물도 소식도 뜸했구나. 친구야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있니?
연말로 향해 가는 분주함과 조급함 가운데라 그런지 나는 읽다가 그냥 두어도 괜찮고, 아무데나 펼쳐 읽을 수 있는 에세이에 조금 더 쉽게 손이 가는구나.
얼마 전에 《나는 가장 슬픈 순간에 사랑을 생각한다》라는 에세이를 읽었어.
작가는 회사를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분이야. 새벽부터라는 필명으로 트위터에 일상을 올렸는데 그 글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서 책으로까지 엮어졌대. 짧은 글 속에서 고단함, 아픔들도 진하게 배어져 나오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을 잘 다독이며 일상을 채워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어. 열심히 일하는 틈틈이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쓰며 잔잔히 자신의 삶을 풍족하다 여기는 마음의 여유가 부럽기도 했어. ‘또 한해를 살아내야 한다. 선택하고 물러설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삶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새벽에 깨어나는 모든 것들은 삶의 간절함을 담고 있다.’ 이런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나의 간절함을 담은 기도는 무엇인지, 이제는 새해가 되어도 감흥이 없는 나이지만 어떤 자세로 새해를 맞이 할까를 생각하기도 했단다.
두 번째 에세이는 이야기장수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이야.
몇 해 전에 표지가 예뻐서 손에 들었던《빅토리 노트》라는 육아 일기가 있었는데 딸을 키우며 썼던 육아 일기를 꼭꼭 숨겨 두었다가 성인이 된 딸에게 선물했고, 그 딸이 책으로 만든 거였어. 나도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육아 일기를 쓰겠다고 일기장에 몇 번 긁적이다 둔 것을 아쉬워하며 읽은 기억이 있었거든, 그 육아일기를 쓴 이옥선님이 두 번째 에세이집을 낸 거야. 78살의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유쾌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어.
‘젊었을 때는 지지부진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인생에서 중대한 뭔가를 빠뜨렸거나 어딘가에 더 중요한 인생의 알갱이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갈등한 시기도 있었다. 하나 중대한 것은 바로 그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선아, 우리는 아직 인생에 다른 중요한 것을 찾아서 허둥지둥 찾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일까? 아니면 이제는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걸까? 선자이기도 하고 후자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인용 했는데, 무라카미는 자신의 주인공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세 가지 요소로 유머, 친절함, 자기 억제를 꼽았다고 해. 이 세 가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속한 모순, 자아, 공포 따위는 쓰지 않아도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구태여 쓸 필요가 없다고 했대. 얼마 전에 성당에 있는 성물방에서 조각품을 구입한 일이 있었어. 천주교는 내게 익숙하지 않고 특히 물건을 구입해야 되니 더 쭈뼛거리게 되었어. 계산대에는 수사님 한 분이 아주 바쁘게 일하고 계셨는데, 내가 사고 싶은 조각품에 금액 표시가 붙어 있지 않은 거야. 할 수 없이 기다렸다가 그 바쁜 수사님을 붙들고 여쭐 수밖에 없었어. 수사님은 아주 밝은 얼굴로 “금액이 안 붙어 있는 건 꽁짜로 가져가~라~~는 뜻이 아닐까요?” 라며 경상도 억양으로 익살스럽게 말씀하시는 거야. 길게 늘어서서 지루하게 기다리던 사람들도 나도 모두 깔깔 거리며 웃었고, 갑자기 분위기가 환해 졌지. 혼자서 종종거리시면서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친절과 유머로 상황을 대처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며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남해의봄날에서 만든 김탁환 작가님의 《참 좋았더라》라는 소설이야. 김탁환 작가님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가인데 특별히 이 책은 이중섭 화가가 통영에서 우리가 잘 아는 소를 그리기까지의 이야기와 다양한 작품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어. 이중섭 화가의 작품은 정감 있고, 대단하지만 안타까운 가정사와 말년의 초췌함이 내게는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 소설을 통해 이중섭 화가를 다시 보게 되었어. 이중섭 화가는 특히 시를 아주 좋아했다고 해. “시인을 견자(見者) 즉 보는 사람이라 하디, 무슨 것을 봔? 평범한 사람은 아니 보는 걸 본다 이거이야. 기렇게 본 걸, 글로 바꾸문 시인이구 그림으로 바꾸문 화가! 시인은 글 짓는 화가구, 화가는 그림 그리는 시인이다 이 말입네.” 시인은 글 짓는 화가, 화가는 그림 그리는 시인이라니 너무 멋있는 말이지! 매우 우직했지만 늘 시를 외웠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마음이 가득했던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대단했던 사람이 이중섭이었어.
친구야, 따뜻한 봄이 되면 이중섭 화가가 거닐었던 통영의 구석구석을 함께 거닐어 보는 건 어때? 이중섭 화가의 시선으로 위에서 세병관을 내려다보고, 아래에서 충렬사를 올려보기도 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거닐었을 바닷가에도 가보자. 여러 작가들과 화가들과 만나 전시도 했고, 이야기도 나눴을 다방도 찾아보자. 그리고 읽었던 책 이야기도 실컷 나눠보자. 네가 그동안 읽었을 책 이야기도 많이 궁금하다.
올 겨울은 많이 추울 거라고 그러는데 건강 조심하고 잘 지내다 꼭 만나자.
2024. 11. 18.
친구 영숙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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