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아는 민주주의
삶이 되는 민주주의
김경윤(인문학 작가)
민주주의는 이념의 완성태가 아니라 실천의 진행태입니다. 민주주의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사람이 합니다. 민주주의를 일궈낸 사람이 있고, 민주주의를 망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민주주의를 막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이런 사람들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정국가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멈춰졌습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우리 민중은 일본제국주의와 맞서야 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노력을 함께 해야 했습니다. 그 민주주의 수립의 역사의 한복판에 임시정부가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알기 위해 읽어야할 책 중 첫 번째 책은 그래서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입니다. 27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겨레의 큰 스승인 백범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 주고 있는 책입니다. 김구는 조선왕정복고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꿈꾸면서, 우리나라가 문화가 아름다운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김구는 자유를 이렇게 구상합니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이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432쪽)
해방이 되고, 민주정부가 수립되기는 했으나, 남북한이 분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자유는 억압되고, 평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 국민이 자유를 외치며 들고 일어납니다. 4.19 혁명입니다. 민주주의가 승리합니다. 이후 이승만 독재는 종식되지만 다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섭니다. 꽃이 피자마자 집니다. 이후 군사정권을 몰락시키기 위한 민주화운동이 전개됩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바로 민주와 반민주를 둘러싼 싸움이었습니다. 그 싸움은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때가 우리 부모,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왔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한 눈에 조망하기에는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만한 책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교과서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으로서의 민주주의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는지,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었는지 알게 됩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를 경제원리로 국가가 수립되었습니다.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국민을 주인으로 세우기는 이념이지만, 경제원리로서의 자본주의는 자본(돈)이 주인행세를 하는 시스템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이 주인행세를 하고, 돈이 없는 사람은 노예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정치적 자유는 보장되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가 됩니다. 빈익빈 부익부,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삶은 더욱 어렵게 됩니다. 그 불평등의 밑바닥에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복지정책이 필요합니다. 노동자를 짐승처럼 취급하는 사회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하기 위해서는 인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인권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또한 싸움을 통해서 얻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선언하고 싸웠던 노동자가 있습니다. 한국노동운동의 찬란한 불꽃처럼 빛나는 사람, 바로 전태일입니다. 민주주의를 알기 위해, 민주주의를 살기 위해 《전태일 평전》을 읽어야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우리도 전태일의 후예들이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80년대 노동자의 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던 전태일은 청계천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바보회>를 만들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재단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것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만 언젠가는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
그래요. 바보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바보 취급당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보에서 인간 대접받는 싸움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보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중간에 멈춰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굴러가는 자동차가 아니라, 우리가 한 발 한 발 밀고 당겨야하는 수레바퀴입니다. 우리가 멈추면 민주주의도 멈춥니다. 우리가 땀 흘리고 노력한 만큼 민주주의의 열매를 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현장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자로 살아야 합니다.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삶이 없는 이념은 불구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과 생태의 문제에 민감해야 합니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결과로 인간의 삶의 터전인 자연은 파괴되고, 동물들은 멸종되고, 생태가 교란되고, 기후가 변화되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간만을 위한 민주주의는 이제 생명체와 환경을 위한 민주주의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인권만이 아니라 동물권, 생명권, 지구권으로 인식과 실천이 넓어질 때,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도 안전하게 보장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읽어야할 마지막 책으로 구도완이 쓴 《생태민주주의》를 추천합니다. 이 책은 자연과 사회의 관계, 산업주의를 둘러싼 정치담론, 생태와 관련된 정치담론을 간략히 살펴보면서 생태민주주의의 모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민주주의’라는 말 자체가 낯선 분들에게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출발했다고 이야기합니다만, 그것은 너무도 먼 이야기이고,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모습과도 많이 다릅니다. 따라서 지식과 교양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삶과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익히고 싶은 독자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탐구하는 것이 훨씬 유익할 것 같아 이상의 4권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여러 차례 강조드렸지만 아는 것보다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를 알고 싶으면 민주주의자로 살아가십시오. 불의에 항거하고, 선거 때 투표하고, 가난한 사람과 연대하고, 자연과 생명을 보살펴 주십시오, 민주주의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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